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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회사가 망했다?

약 한 달 전, 회사로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 메일을 받게 되었다.

이 회사에 다닌 지는 1년 하고도 2개월 쯤 되었는데, 회사가 규모에 비해서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빠른 시점에 망 퇴직을 시작할 줄은 몰랐다. 나름 든든한 모회사를 너무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그동안의 상황과 내가 해온 고민들이다.

희망 퇴직의 규모는 미정이고 기한은 1주일이라고 했다. 희망 퇴직을 하게 되면 퇴직 위로금으로 1달치 월급과 몇 일이 지난 후 인사팀 Q/A 시간에 들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퇴직 규모에 대해서 검토한 옵션은 3가지이다. 30%, 50%, 70% 어떤 옵션으로 진행될지는 아직도 결정되지 않았다.

모든 돈이 필요한 모든 복지제도는 사라진다. (식대, 야근시 저녁 값, 택시비, 간식, 믹스 커피, 사무용품 등)

퇴직 이후 남은 사람들의 Next?: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다. 당장에 기업에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남은 사람의 월급도 밀릴 수 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을 재정비한 후 우리는 우리가 원래 하던 것을 계속 할 것이다.

희망퇴직을 하지 않으면?: 희망퇴직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필요에 따라 권고사직이 진행될 것이다.

음... 이 세션을 들으면서 점점 나는 절망에 빠졌다.

희망적인 얘기는 하나도 없고, 설령 남더라도.. 남아서 리스크를 지고 열심히 해서 회사를 살려 내자는 말도 없었다.

희망 퇴직 마감 전일에 진행된 경영진 세션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회사의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 매각이 이루어지면 신규 투자자와 함께 다음을 그려 갈 것이다.

떠나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더 이상 의미있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단 회사에 남아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내가 진행하던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를 끝내지 못했다.
  • 작년 일년간 정말 많은 고생을 해서 인사평가 최고 등급을 받았다고 뒷문으로만 들었는데, 정식으로 듣고 싶었다.
  • 이대로 나가기엔 왜인지 모를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았다.

이 이후.. 다행히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매각 절차가 진행중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진행된 경영진 세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우리는 지난 날 실패했다. 우리 회사엔 슈퍼맨이 없었고, 여러분 모두가 더 열심히 해서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있을 예정이다.
  • 신규 투자자가 우리에게 약속한 런웨이는 6개월이다. 그 안에 무엇인가 보여줘야 한다.
  • 작년의 인사평가 결과에 따른 어떠한 보상은 (올해 전원 연봉 상승은) 없다.
  • 돈이 필요한 모든 복지(식대, 간식, 사무용품 등)의 재 도입은 매우 신중히 결정할 것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라.
  • 당장에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6개월 뒤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 마지막으로, 우리가 잘 되었을 때 그 과실을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혼란스러워 졌다.

  • 6개월은 뭔가 보여주기에 너무 짧은 기간인 것 같고
  • 다른 부서의 핵심 인력들이 대거 이탈한 상황이고
  • 남은 사람들의 처우 개선은 해주지 않는다고 하고
  • 리스크를 감수하고 나서 잘 되었을 때 그 과실은.. 그냥 나눌 수 있게 노력은 해볼게 라는 이야기로만 들렸다.

이렇게 생각한 배경에는 그동안의 경험이 좀 영향을 준 것 같은데

  • 그동안의 우리 회사가 직원들 복지 | 처우에 인색했다고 느끼고 있었고
  • 돈을 쓰고도 불만을 만드는 식의 조금은 답답한 복지 제도가 꽤 있었고
  • 경영진에게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창구가 매우 제한적이기도 했고
  • 경영진은 가끔씩 나타나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일이 처리되기만을 원했다고 느꼈고
  • 희망 퇴직 기간 동안의 절망적인 분위기와
  • 희망 퇴직이 결정된 이후에도 대부분의 인원을 월말까지 출근 시키며 업무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지 못한 경영진 및 관리자에 대한 불신
  • 희망 퇴직 이후 2주간 퇴직 예정자들과 함께 있으며 불안한 마음에 지원했던 회사들로부터 들려온 합격 소식

모르겠다. 내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마지막으로,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은

  • 갈 수 있는 곳이 생겼다! (모든 조건이 현재보다 좋은)
  • 그럼에도 나는 고민이 된다. (지금의 회사는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못함에도)
  • 남게 되면 또 한 번 스스로 연봉을 깎고 이 회사에 남는 것인데 (입사할 때 다른 선택지보다 연봉이 낮음에도 들어왔다)
  • 이 행동에 대한 보상 심리를 스스로 제어할 수 있을까?
  • 6개월 뒤에 회사가 잘 되었을 때, 챙겨주는 보상에 대해서 내가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이런 거 저런 거 생각할 거면 그냥 나가서 당장 더 잘 주는 걸로 보장된 회사로 가면 되는 게 아닐까?
  • 지금 회사의 스텐스는 완벽한 게 아니면 안돼! 로 많이 느끼는데 (복지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으면 하고 아님 하지마!, 서비스 기능도 상위 결정권자의 만장일치가 아니면 하지 마!) 바뀐다고는 하지만 과연 바뀔까?
  • 복지는 안 바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요청하라고 한다. (그냥 포기하면 편한데.. 해주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말라고.. 계속 고통 받으라는 건가? 생각보다 포기한다고 큰 고통이 오지는 않는다.)
  • 서비스 개발에 대한 부분들은 조금씩 바뀌는 것 같기도 하다.

결론은 더 좋은 조건의 갈 곳이 생겼다! 남을까? 남으면 진심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을까?